[책] 수학의 확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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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의 확실성 저자 : 모리스 클라인 현대인이 수학에 관해 갖는 환상, 즉 명확하고 확실하며 흠이 없다는 환상, 그 자체로 진리라는 환상을 깨부순다. 수학은 과연 무엇일까? 수학은 과연 어떤 성질을 갖고 있을까?  형이상학적 철학과 논리로 접근할 수 도 있지만 작가는 역사적으로 수학이 어떻게 만들어져왔는지를 살펴보면서 그 역사적 발전과정 자체에서 수학의 불확실함의 증거를 찾는다. 이는 과학은 과학의 역사 그 자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음수는 어째서 수인가? 허수 i는 어째서 수로 받아들여졌는가? 를 살펴보는 것이 실질적인 접근이 나에겐 마치 화석이 진화론의 증거가 되듯이 확실해보였다. 책의 말미에 수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작가의 추측이 어렴풋 나오지만  명확하게 무엇이다하고 단정짓지는 않는다. 책 제목이 말해주듯 수학이 확실하고 명확한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인듯하다. 수학을 신앙하게 되었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으로는 대표적인 것이 물리학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음에 대한 심취인것같다. 리사 펠드만의 수학의 함정에는 아름다움을 진리로 착각하는 이론 물리학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수학은 최고의 도구이지만 완벽한 도구는 아니다. 수학은 확실성과 명확성을 갖지만 그것이 완벽한 확실성과 완벽한 명확성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최고이지만 완벽하지 않기에 조심해서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성역을 만들지 말라

 예전에 비정상 회담에서 "혐오 표현도 표현의 자유인가" 라는 주제로 토론을 했습니다. 대다수의 패널들이 표현의 자유에도 제한이 있다고 한 반면에 제 기억으로 타일러 만이 유일하게 표현의 자유에 제한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타일러는 "표현의 자유는 케이크를 잘라 한 조각만 취하는 것처럼 부분만 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라고 이유를 댔습니다.

저도 타일러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그 이유는 표현의 자유의 본뜻은 "비판에 대해 성역을 만들지 말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침범할 수 없는 성역이 정해지는 순간 표현의 자유는 파괴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경우는 표현의 자유일까요?

중국에서 '표현의 자유 보장함. 단 공산당 비판 금지'

종교에서 '표현의 자유 보장함. 단 신과 종교는 비판 금지'


인간의 존엄성이나 자유, 평등과 같은 기본권, 인간의 생명, 명예와 같은 것들은 표현의 자유가 침범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고정관념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살인과 절도, 방화, 기물파손이 악이라는 것이 고정관념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지금껏 타파해왔던 수많은 고정관념들은 타파 되기 전까지만 해도 상식이었으며 심지어 많은 경우 인간에게 해로웠습니다. 고정관념은 타파 되기 전까지 사로잡혀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어떤 상식적인 가치조차도 성역이 되어서는 안되는 겁니다.

심지어는 비판과 비난을 나누면서 비판은 해도 되지만 비난은 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엄밀하지 않습니다. 비판과 비난을 구분하는 기준은 고정관념이 아니라는 걸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누군가 어떤 말을 했다면 그 말에 대해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건 다른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입니다. 누군가 살인을 옹호한다면 그것이 사회에 끼칠 해악이나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면서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습니다. 다만 말도 못 꺼내게 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모든 생각은 공론의 장에서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비판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아무리 쓰레기같은 생각일지라도 말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의 규율들은 비판을 통과하여 받아들여진 것들입니다. 하지만 언제든 다시 공론의 장이라는 비판대에 오를 수 있습니다. 그것을 막아선 안됩니다.


성역을 만들지 말라.

뉴스를 볼 때, 유튜브를 볼 때, 댓글을 읽을 때 혹시나 누군가 성역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감시해야합니다. 누군가 비판해선 안되는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면 그 자야 말로 민주주의의 적이고 시민의 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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