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한국인은 왜 여행을 좋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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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널:이충녕의 재점화 충코씨는 여행의 본질을 보는 것이라고 보고 보는 행위의 의미를 살핌으로써 한국인이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저는 한국인이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가 한국인의 현세적인 세계관 때문이라고 봅니다. 제가 볼때 한국인은 내세에 대해서 별 가치를 두지 않는 것같습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는 말은 이런 가치관을 잘 보여준다고 봅니다. 내세가 없다면 현생에서 해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해봐야한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또한 이런 관점에서는 현생에는 끝이 있으므로 짧은 시간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하는 것이 가치있습니다.  '해 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다와 보다가 합쳐진 말이죠. 하는데는 시간이 많이 소모됩니다. 하지만 보는데는 시간이 많이 소모되지 않죠. 그래서 가능한한 많은 경험을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을 생략하고 보기만 하는 것이 한국인의 여행입니다. 할 수 만 있다면 '하는' 경험이 더 좋죠. 하지만 애초에 현생만을 사는지라 직접 해보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합니다. 그래서 한국의 패키지 관광을 보면 재밌는 특징이 있습니다. 절대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가능한 한 많은 곳을 둘러 보는데 집중합니다.  또 여행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내 두 눈'으로 '직접'보는 것 자체에 가치를 둡니다. 왜냐하면 보는 것이 가치 있는건 어디까지나 그것이 경험의 액기스로써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설명을 듣는 것은 경험이 아니죠. 그래서 관심이 없는겁니다. 많은 경험에 가치를 두는 연장선에서 나오는 말이 '남들 하는건 다 해봐야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와 같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 하는건 다 해봐야한다'는 반드시 해야하는 최소한의 경험, 즉 경험의 하한선을 가리키며,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에는 경험의 호불호를 가...

고타마씨의 가르침 1

긴글 스킵하실 분들을 위해서 요점만 먼저 말합니다.
불교는 과학적 문제해결방법이다.


 저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불교를 바라봅니다. 기존의 관점으로 불교를 바라보시는 분들은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이 맞다는 가정 하에 불경의 말들과 경전의 역사를 짚어보면 상당히 맞아 떨어진다고 느끼시게 될 겁니다.

말을 풀어가는데 있어 편의를 위해 단정적으로 말을 하겠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깨달음, 마음, 무아 같은 것이 아니라 "인생을 살면서 부딪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어떻게 대할 것이냐"에 대한 것이다.
즉,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의견을 구분하여 인과관계를 바르게 파악하여야 한다. 인과관계를 바르게 파악하면 문제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고, 문제 해결에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진짜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객관적 사실이란 생각으로 만들어내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무위법이라고 부른다. 주관적 의견이란 생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 유위법이라고 부른다. 그래도 구분이 가지 않는다면 객관적 사실이란 생각에 따라 변하지 않는 것이고, 주관적 의견은 생각에 따라 변하는 것임을 기준으로 구분하라.

모든 객관적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사실에 집중하는 것이다. 만약에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면 누가 그것에 대해서 뭐라고 주장하던 간에 그건 의견에 지나지 않게 된다.

예를 들어 우주는 무한하거나 유한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 이럴 때 현명한 태도는 단정 짓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 우주는 유한하다 혹은 무한하다고 주장을 한들 우리가 그것을 확인할 수 없다면 둘 중에 하나가 사실일 것이지만 결국 의견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형이상학적 질문에 대한 답변은 부처님의 관심사항은 아니지만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의견을 구분하고 사실에 대해서는 확인하는 것을 근본으로 둔다"는 부처님의 방법을 적용할 수는 있다. 확인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질문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바른 태도인지도 알 수 있는 것이다.(독화살의 비유,https://www.dhammatalks.org/suttas/MN/MN63.html)

인간에게 있어서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는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 아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은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의 이치이며 객관적 사실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이로 인해 괴로울 수는 있을지언정 번뇌(어쩔 줄 몰라 갈팡질팡하는 마음)할 것은 없다.(키사 고타미의 이야기, https://www.dhammatalks.org/suttas/KN/Thig/thig10.html)

윤회를 말하는 사람들은 몸에서 몸으로 옮겨가는 자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몸에서 몸으로 옮겨가며 변하지 않는 어떤 실체를 지금의 말로 하면 영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영혼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

철수가 보고, 철수가 듣고, 철수가 말하고, 철수가 생각한다.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그 주체는 모두 따로따로가 아니라 철수라는 하나가 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철수가 존재한다고 여기게 된다. 따라서 "색성향미촉법에 속는다"는 말은 "색성향미촉법에 속아서 사물을 변하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는 뜻이 아니라 "색성향미촉법에 속아서 '나'가 있다고 여긴다"는 뜻이다.

무릇 사물을 관찰해보면 모든 것이 변하지 않는 실체를 갖는 것이 아니라 조건들이 만나서 생기는 "현상"이다. 실체와 현상을 구분하여야한다. 현상은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과 관련이 있다. 현상은 사건(event)이고 사건이란 공간과 시간을 모두 따져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불이라는 현상은 타는 물질, 산소, 발화점 이상의 온도라는 3가지 요소가 만나서 생겨나고 지속되다가 요소가 흩어지면 사라진다. 불이 생겨나면 3가지 조건이 흩어져있을 때는 볼 수 없었던 열과 빛이라는 새로운 현상이 생겨난다.(현대의 말로 촛불이라는 현상과 촛불에서 나오는 열과 빛이라는 현상은 동일하게 현상이라는 말로 되어 구분되지 않지만, 불교에서는 열과 빛같은 것에 대해서는 성품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구분한다.)

사람도 이와같다. 사람은 현상이다. 경전에서 지수화풍 사대가 만나서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현대적 용어로 말하자면 탄소, 수소, 산소, 질소, 인 등의 원자들이 모여서 분자를 이루고, 분자들 간에 일어나는 화학반응의 집합이 사람이다.
불에 있어서 열과 빛처럼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도 이와 같아서 몸의 현상 중에 하나일 뿐이다.(촛불의 성품이 열과 빛이듯이 우리 몸의 성품이 마음이다) 바차고타 이야기의 불의 비유(https://www.dhammatalks.org/suttas/MN/MN72.html ) 에서 깨달은 자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깨달은 자뿐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에게 공통된 이치이다. 생명은 현상이다.

불교는 윤회를 부정하고, 죽으면 끝이다. 그러나 허망함에 빠져서는 안됀다. 오히려 유한하기에 삶을 아껴써야 한다. 꿈은 사실이 아니지만 '사람은 꿈을 꾼다'는건 사실이다. 우리가 괴로움을 싫어하는 것은 사실이고 이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도 사실이다. 부처님이 말해주는 문제해결방법으로 최대한 괴로움을 피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충실한 삶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부처님은 괴로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가하였고 해결방법을 발견하였다. 그 방법은 영혼이나 자아, 윤회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문제들에 대한 답도 줄 수 있지만 본래 취지에 맞는 사용법은 어디까지나 생계를 유지하고 가족과 화목하게 지내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등 삶의 문제를 다루는 것에 있는 것이다. 앞서 말했던 독화살의 비유에서 자신이 설하는 것은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한 답이 아니라 고집멸도라고 이야기한 것과 같은 뜻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불교는 전혀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니고 현실을 살면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대하는 법에 관한 고타마의 답변이다.


마지막으로 불교적 가르침을 어떤 식으로 적용하는지 예를 들어 본다. 남존여비 사상이라는 것이 있었다. 남존여비에서 남,여는 사실이고 존, 비는 생각이다. 그래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듯이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다.

하지만 남자가 존귀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 의견이고 여자가 비천하다는 것도 사실이 아닌 의견이다.

하나 더 예를 들면 사람의 마음은 직접 확인할 방법이 없고 유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말과 행동 뿐이다. 이런 관점은 숫타니파타의 천한 사람의 장에서 잘 드러난다. "날 때부터 바라문이 되는 것이 아니고 날 때부터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오. 행위에 따라 바라문이 되고, 행위에 따라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이오"라는 말은 행위를 통해 마음을 짐작하고 그 마음이 괴로움을 부르는지 즐거움을 부르는지에 따라서 비천을 판별하였는 것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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