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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실제 홈트레이닝 고려해야 할 사항

홈트레이닝 운동 고려 사항 1. 갖추어야 할 운동 기구가 가격이 저렴하고 크기가 작고 안정성이 있어야 한다. 홈트의 최대 장점이 접근성이 좋다는 것이다. 접근성은 시간적 공간적 의미일뿐만 아니라 금전적인 의미 또한 포함한다. 비싼 운동기구를 사용해야한다면 그것 자체로 접근성이 떨어진다. 또한 안정성이 있어야한다. 기구가 불안정하면 운동에 오롯이 집중할 수가 없다. 집중할 수 없다면 성과도 없지만 불편함 때문에 심리적 문턱이 생긴다. 심리적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운동기구의 예로 가벼운 치닝디핑철봉이나 문틀철봉이다. 치닝디핑철봉은 무게가 가벼우면 흔들거려서 안정성이 떨어지며 문틀철봉은 철봉 자체가 떨어질 수도 있으며 2. 한번에 최대한 많은 운동 효과를 줘야한다. 많은 부위의 근육을 자극하면서 유산소와 무산소의 운동효과를 동시에 가지는 것이 좋다. 그래야만 시간적으로 효율적이며 고통의 시간도 짧아진다. 3. 좁은 공간에서 가능해야한다. 집에서 생활공간을 제외하고 공간을 내서 해야한다. 더군다나 나는 운동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은 사실 가장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운동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강건한 몸을 만들고 강건한 몸에서 만들어진 강건한 정신으로 문제 상황을 해결해 나가야한다. 가진 것이 없으면 좁은 곳에서 살게 되기 마련이다. 좁은 곳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이란건 그래서 없는 사람에게 더욱 필수적인 요소이다. 홈트레이닝으로 몸을 개조하여 삶을 개척해야 한다. 그래서 운동기구는 최대로 커도 하프랙이 최대치이다. 케이블 머신까지 집에 들여 홈트를 하느니 그냥 헬스장에 다니는 것이 낫다.  4. 쿵쾅거리거나 소음을 내서는 안된다. 아파트처럼 대부분은 여러 가구가 함께 산다. 소음에 조심일 수 밖에 없다. 도구의 제약이 별로 없다는 것만으로 쿵쾅거리는 운동을 추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생각이 없는 것이다. 마운틴클라이머나 점프 스쿼트같은 것은 분명 좋은 운동이지만 이런 면에서 홈트에 적합한 운동이 아니다. 홈트에 적합한 운...

[생활] 실제 홈트레이닝 고려해야 할 사항

홈트레이닝 운동 고려 사항 1. 갖추어야 할 운동 기구가 가격이 저렴하고 크기가 작고 안정성이 있어야 한다. 홈트의 최대 장점이 접근성이 좋다는 것이다. 접근성은 시간적 공간적 의미일뿐만 아니라 금전적인 의미 또한 포함한다. 비싼 운동기구를 사용해야한다면 그것 자체로 접근성이 떨어진다. 또한 안정성이 있어야한다. 기구가 불안정하면 운동에 오롯이 집중할 수가 없다. 집중할 수 없다면 성과도 없지만 불편함 때문에 심리적 문턱이 생긴다. 심리적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운동기구의 예로 가벼운 치닝디핑철봉이나 문틀철봉이다. 치닝디핑철봉은 무게가 가벼우면 흔들거려서 안정성이 떨어지며 문틀철봉은 철봉 자체가 떨어질 수도 있으며 2. 한번에 최대한 많은 운동 효과를 줘야한다. 많은 부위의 근육을 자극하면서 유산소와 무산소의 운동효과를 동시에 가지는 것이 좋다. 그래야만 시간적으로 효율적이며 고통의 시간도 짧아진다. 3. 좁은 공간에서 가능해야한다. 집에서 생활공간을 제외하고 공간을 내서 해야한다. 더군다나 나는 운동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은 사실 가장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운동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강건한 몸을 만들고 강건한 몸에서 만들어진 강건한 정신으로 문제 상황을 해결해 나가야한다. 가진 것이 없으면 좁은 곳에서 살게 되기 마련이다. 좁은 곳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이란건 그래서 없는 사람에게 더욱 필수적인 요소이다. 홈트레이닝으로 몸을 개조하여 삶을 개척해야 한다. 그래서 운동기구는 최대로 커도 하프랙이 최대치이다. 케이블 머신까지 집에 들여 홈트를 하느니 그냥 헬스장에 다니는 것이 낫다.  4. 쿵쾅거리거나 소음을 내서는 안된다. 아파트처럼 대부분은 여러 가구가 함께 산다. 소음에 조심일 수 밖에 없다. 도구의 제약이 별로 없다는 것만으로 쿵쾅거리는 운동을 추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생각이 없는 것이다. 마운틴클라이머나 점프 스쿼트같은 것은 분명 좋은 운동이지만 이런 면에서 홈트에 적합한 운동이 아니다. 홈트에 적합한 운...

[글] 비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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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검 젊은 무사도 명심해야 할 일이 있고, 검술에는 비검이라 칭하는 것이 있다. 필승불패라 함은 난 상대의 칼을 받지 않고 내 칼만이 상대에게 닿도록 몸을 비틀어 7전8도하는 술리. 참으로 언어도단이 아닌가. 나만이 살고자 하여 상대의 눈을 속이려 한다면 도적배들과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진정한 무사의 검법은 오직 하나. 검을 들고 상대가 닿는 곳까지 접근하여 휘두르는 것이다. 여기엔 잔꾀도 기술도 필요 없다. 내 칼이 닿는 거리이니 상대의 칼도 내게 닿을 터. 중요한 건 상대에게 다가가 검을 내리칠 뿐이다. 진정한 검사는 승부를 생각지 않고 오직 죽을 각오로 검을 휘두를 뿐이다. 이리해서 꿈은 깰 것이니. =============== 시구루이 6권 마지막에 쓰여진 글이다. 누가 쓴 글인지는 모르겠다. 글전체에 걸쳐서 정정당당함을 피력하고 있다. 그것이 무사도에 걸맞다며 정정당당함의 당위성을 내세운다. 하지만 나는 도덕적 당위가 아닌 전략적 측면에서 읽었다. 비검을 날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잔꾀도 없고 기술도 없는 사람들, 이러한 사람들을 아둔한 사람이라 부른다. 아둔한 자에게 필사의 각오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할 줄 아는 것이 적에게 다가가 휘두르는 것이 전부라면 적어도 그것 하나는 필사의 각오로 휘둘러야 하는 것이다. 돈도 없고 백도 없고 재능도 없다면. 오로지 정면승부만을 봐야한다면 두가지 선택만이 있다. 체념하고 대충할 것이냐, 필사의 각오로 임할 것이냐. 체념하고 대충하는 것은 반드시 죽는 길이요, 필사의 각오로 임하는 것은 살아날지도 모르는 길이다. 이전 '광기에 대해'에서 말한 바와 같이 패배가 분명한 싸움을 승패가 불분명한 지경까지 밀어붙이게 만들 수 있는 길이다. 이러한 아둔한 자의 전략을 시행함에 있어서 명심해야 할 것이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승부를 생각지 않고 오직 죽을 각오로 검을 휘두를 뿐이다" 승부를 생각하지 말아야한다. 승부를 생각하고 패배를 예측하면 움츠러들고 검을 휘두를 수 없다...

[글] 광기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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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기에 대해 야마구치 타카유키 '무사도는 죽음에 미치는 것. 수십 명이 한 사람을 죽이기 어렵다.' 무사도란 죽음에 미치는 것이다. 그런 상태에 있는 한 사람을 죽이는데 수십 명이 덤벼도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라고 「엽은(葉隱)」에 적혀있다. '무사도를 분별할 수 있다면 이미 늦은 것이다.' 검술은 이론이라 일상 대결에서 자기 기량보다 뛰어나면 패할 것이고, 못하면 이기며, 비슷하면 무승부가 되기 마련이다. 허나 검술을 배워 이와 같은 사려가 가능해진다는 것은, 무사도에 있어서는 한 수 뒤처진 것이라고 「엽은」은 경고하고 있다. 싸우기 전에 사고 속에서 손익계산을 하고, 결국 행동은 미수에 그치는 자는 무사가 아니라 비겁자다.  무사도에 있어서는 상대가 한 수 위든 다수이든 싸워야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승리하는 것이 결국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제정신으로는 대업을 이룰 수 없다.' 죽음을 각오하고 매사에 임해야만 승부의 끝이 분명한 싸움을 예측불능의 영역까지 밀어붙일 수 있다. 치유 불가능한 상처를 입은 자가 사자의 무리를 향해 가야할 때, 평범한 자가 재능 있는 자와 싸움을 결심할 때, 「엽은」의 이 한 구절이 눈부시게 빛나 보일 것이다. 죽으려고 미치는 것만이 생명의 마지막 기댈 곳이 된다. ※엽은(葉隱) : 18세기초, 야마모토 조초가 저술한 서적. ============================ 시구루이 2권 마지막에 실린 작화가 야마구치 타카유키의 글이다. 왜색이 물씬 풍기는 사무라이 만화에 실린 극단적인 내용의 글이라 우익 사상처럼 보이기도 하고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자면 이순신 장군의 '필사즉생 필생즉사'와 동일한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라는 이순신 장군의 명언은 언뜻 생사가 오가는 전장과 같은 매우 특수한 상황에서만 통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

[글] 잔혹에 대해

 잔혹에 대해 난조 노리오 인간의 감정이 극단으로 달릴 때 잔혹은 태어난다. 아무 문제없이 일상생활이 평온하게 영위되고 있을 때, 잔혹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문제가 발생하고, 사회나 세상, 주변의 인간관계가 그 문제를 완화시킬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인간의 감정이 극으로 달렸을 때 드러나는 것이 잔혹이다. 인간의 감정이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는 다양한데, 예를 들면 슬픔 등이 그 하나다. 내가 무사의 아내 등을 소설로 쓸 때는 그런 슬픔을 표현하는데, 무사의 문제를 소설로 쓸 경우에는 잔혹을 표현한다. 나는 무사를 소설의 소재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당연히 「잔혹」도 많아진다. 남자의 감정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잔혹해졌을 때다. 남자도 부드러움을 표현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딘가 연극적이다. 남자의 경우 잔혹해졌을 때 그 본성이 나온다. 그래서 남자의 세계를 현실로 표현하려면 잔혹은 필수다. 예나 지금이나, 세계 어디서나 그렇다. 역사상의 문제를 뭔가 하나 들춰보면 된다. 그것을 더 파고들면 반드시 잔혹한 상황이 있을 테니까···. 나는 주로 역사소설을 써 왔지만, 예전의 사회에서는 잔혹이 드러나기 쉽다. 그곳에서는 뭐든 잔혹하다. 전국시대의 무장들처럼 대립을 완충해주는 조직이 없는 곳에서는 모두가 적대자와 직접 부딪쳐야만 한다. 자신이 이기든지 적의 손에 죽든지 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에는 사람들이 웃어른이나 동료들에게도 감정을 억누르며 살았기 때문에, 일단 그 균형이 깨지면 모든 것이 충돌하게 된다. 여러 감정들이 일시에 분출되고 극단으로 달린다. 잔혹해진다. 인간이 원래부터 잔혹한 동물인 것은 아니다. 뭔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에 대립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다. 평온하고, 잔혹이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회도 역사 속에는 많이 존재한다. 잔혹이 표면화하지 않도록 제어하는 게 무릇 정치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문제가 없는 세계, 있어도 그 문제를 받아들이고 아무 일도 일으키지 않는 인간...

[책] 시구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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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 난조 노리오 작화 : 야마구치 타카유키 시구루이를 본 지도 어느 덧 20년이나 지났다. 하지만 처음 시구루이를 봤을 때의 충격은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시구루이 전에 나온 사무라이물이라면 바람의 검심, 사무라이 디퍼 쿄우, 사무라이 참프루, 아프로 사무라이, 무한의 주인, 베가본드 같은 것들이 있다. 거기서 묘사하는 것은 예술 혹은 게임과 같은 느낌이었다. 사람을 베어도 상처 하나 없이 HP만 깎이는 것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거기에 진지함을 더하려 예술적인 동작이나 만화적으로 보이는 화려한 검술을 넣기도 했다.  좀 특색 있었던 작품이라면 베가본드인데 베가본드의 사무라이들은 검객이 아닌 철학자들이었다. 칼부림을 하는데 심오한 뭔가를 따지고 있었다. 열광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에겐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시구루이는 전혀 다르다.  잔혹하고 광기에 차 있으며 현대인의 정서와는 전혀 맞지 않다. 시간적으로는 몇백년 차이인 현대와 가깝지만 거기서 묘사하는 인간은 몇만년전 창으로 짐승을 찌르는 원시 수렵인에 더 가깝다. 야수로써의 인간을 묘사하는 것이다. 이것이 굉장히 설득력있게 느껴졌다. 손으로 칼을 들고 적의 뼈와 살을 가르는 인간의 정신은 인간보다는 짐승에 더 가까울 것같기 때문이다.  시구루이에 대한 다른 리뷰를 몇편 보았다. 대개 잔혹한 묘사에 중점을 맞춘다. 하지만 시구루이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은 잔혹 자체가 아닌 어떠한 인간상이고 잔혹한 묘사는 그 인간상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일뿐이라고 생각한다. 시구루이에서 보여주고 싶어하는 그 인간상은 야만의 인간, 짐승으로써의 인간이다.  1권 말미에 원작자 난조 노리오가 쓴 글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은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그걸 조용히 억누르려 하지 않고 감정이 폭발해버리는 인간, 감정을 극단으로 밀어내는 인간이다" 이것이 내 생각에 신뢰를 더 한다. 지금의 문명은 야성을 억누른다. 일본의 정신과 의사 구마시로 도루는 그의 책 "쾌적한 사회의 불...

[내생각]성공학에 대해

 어떻게 하면 성공할 것인가에 대한 책, 강연들이 한참 나오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를 비판하며 성공팔이라고 조롱하는 의견도 많이 보이게 되었다. 심리학이나 사회학같은 학문의 전문지식인들이 대개 성공학을 비판하며 성공학을 비판하면 뭔가 지식이 있어 보이기까지한다. 일단 나는 성공학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다만 나는 성공학을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처럼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이제 내가 해석하는 성공학과 성공학에 대한 비판에 대한 반박을 두서없이 써나가려한다. 나는 인간이 어떤 결과를 얻는 과정을 크게 정신(내면세계), 행동, 결과(외부세계)의 3부분으로 나누어서 바라본다. 정신의 생각과 감정 등이 행동을 일으키고 행동이 그 행동에 대응한 결과를 낳는다. 이것이 인간이 어떤 결과를 얻는 기본 틀이다. 그래서 인생을 바꾸는 방법은 크게 2가지 주제를 가진다. 첫째 행동과 결과의 인과관계이다. 둘째 정신와 행동의 인과관계이다. (이렇듯 정신과 결과는 행동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 첫번째 주제인 행동과 결과의 인과관계는 어떤 행동을 선택할 지에 대한 전략이다. 예를 들어서 '부자가 되고 싶다'는 외부세계에 존재하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선택해야 할 지에 대해 주식을 해야 한다, 부동산을 해야 한다, 사업을 해야 한다는 등의 행동선택지가 있고 어느 것이 유효한 선택지 인지에 대해서 성공학은 논의한다. 또 다른 예로 서울대에 가고 싶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공부시간을 늘린다, 일타강사의 강의를 듣는다, 수면시간을 늘린다, 수면시간을 줄인다, 등등의 행동선택지가 있다. 성공학은 이런 행동선택지 중에 무엇이 유효한 선택지인지에 대해서 논의한다. 행동선택전략에서는 이런 특정 분야에 대한 구체적 전략만 있는 건 아니다. 매 시도마다 신중하게 계획하여 실행할지, 많은 양의 시도를 하여 그 중에 양질의 결과가 나오길 기대할지, 그러니까 양이 먼저인지 질이 먼저인지에 대해서 선택할 수도 있다. 이런 방식의 행동선택은 보편적인 전략에 대...

[유튜브]수학은 발명된 것인가 아니면 발견된 것인가

 채널 : 날것그대로의물리 수학이 발명된 것인지 발견된 것인지 탐구해보는척 하지만 사실 수학은 발견되는 것이라고 결론을 정해놓고 같은 말을 동어반복하는 영상이다. 수학적 실재론자, 즉 플라톤주의자다. 영상에서는 수학이 발견된 것이라는 것, 더 나아가서 우주의 본질이 수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증거로 수학자들이 재미로 만들어낸 허수가 후에 양자역학에서 쓰였다는 점, 상상으로 만들어낸 비유클리드기하학이 상대성이론에서 쓰였다는 점을 든다. 즉 대응하는 물리적 실체를 확인하기 전에 이미 수학적 구조가 나왔다는 점을 수학이 우주의 본질이며 발견되는 것이라는 논리의 근거로 삼는 것이다. 좀더 자세하게 얘기를 듣고 싶다면 날것그대로의물리 채널에 가서 25분짜리 영상을 보시기를 바란다. 나는 이러한 플라톤주의가 종교와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플라톤주의에 젖어있으면서 이성을 표방하는 것을 위선적이라 생각한다. 그럼 나는 수학이 뭐라고 보느냐? 나는 인간이 세상을 보는 방식이 수학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내가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된 정황들과 그래서 인간이 세상을 보는 방식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다. 1. 영상에서 말하기를 3은 지금도 3이고 예전에도 3이고 인간이 있기 전에도 3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인간이 발명하지 않은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일단 3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살펴보자. 3은 1이 반복된 것이다. 그 중에서도 3번 반복된 것이다. 동어반복인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써보자. 1+1+1 이것이 3이다. 수식으로 적는다면 1+1+1=3이 될 것이다. 좀더 원시적으로 써보자 1, 1, 1 이렇게 될 것이다. 여기서 한 차례의 통찰이 더 필요하다. 방금 나열한 3개의 1은 모두 같은 것이라는 거다. 첫번째 1과 두번째 1과 세번째 1이 같지 않다면 결코 3이 될 수 없다. 같은 것이 3번 반복되어야 그걸 3이라고 부른다. 그럼 같다는 것은 뭘까?  같다는 것이 뭔지 단정하기에 앞서서 우리가 뭔가...

[유튜브] 한국인은 왜 여행을 좋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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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널:이충녕의 재점화 충코씨는 여행의 본질을 보는 것이라고 보고 보는 행위의 의미를 살핌으로써 한국인이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저는 한국인이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가 한국인의 현세적인 세계관 때문이라고 봅니다. 제가 볼때 한국인은 내세에 대해서 별 가치를 두지 않는 것같습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는 말은 이런 가치관을 잘 보여준다고 봅니다. 내세가 없다면 현생에서 해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해봐야한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또한 이런 관점에서는 현생에는 끝이 있으므로 짧은 시간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하는 것이 가치있습니다.  '해 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다와 보다가 합쳐진 말이죠. 하는데는 시간이 많이 소모됩니다. 하지만 보는데는 시간이 많이 소모되지 않죠. 그래서 가능한한 많은 경험을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을 생략하고 보기만 하는 것이 한국인의 여행입니다. 할 수 만 있다면 '하는' 경험이 더 좋죠. 하지만 애초에 제한된 시간만이 주어진 것이 인생인지라 모든걸 직접 해보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합니다. 그래서 한국의 패키지 관광을 보면 재밌는 특징이 있습니다. 절대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가능한 한 많은 곳을 둘러 보는데 집중합니다.  또 여행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내 두 눈'으로 '직접'보는 것 자체에 가치를 둡니다. 왜냐하면 보는 것이 가치 있는건 어디까지나 그것이 경험의 액기스로써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설명을 듣는 것은 경험이 아니죠. 그래서 관심이 없는겁니다. 많은 경험에 가치를 두는 연장선에서 나오는 말이 '남들 하는건 다 해봐야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와 같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 하는건 다 해봐야한다'는 반드시 해야하는 최소한의 경험, 즉 경험의 하한선을 가리키며,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책] 수학의 확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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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의 확실성 저자 : 모리스 클라인 현대인이 수학에 관해 갖는 환상, 즉 명확하고 확실하며 흠이 없다는 환상, 그 자체로 진리라는 환상을 깨부순다. 수학은 과연 무엇일까? 수학은 과연 어떤 성질을 갖고 있을까?  형이상학적 철학과 논리로 접근할 수 도 있지만 작가는 역사적으로 수학이 어떻게 만들어져왔는지를 살펴보면서 그 역사적 발전과정 자체에서 수학의 불확실함의 증거를 찾는다. 이는 과학은 과학의 역사 그 자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음수는 어째서 수인가? 허수 i는 어째서 수로 받아들여졌는가? 를 살펴보는 것과 같은 실제 역사를 통한 접근이 나에겐 마치 화석이 진화론의 증거가 되듯이 확실해보였다. 책의 말미에 수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작가의 추측이 어렴풋 나오지만  명확하게 무엇이다하고 단정짓지는 않는다. 책 제목이 말해주듯 수학이 확실하고 명확한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인듯하다. 수학을 신앙하게 되었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으로는 대표적인 것이 물리학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음에 대한 심취인 것 같다. 리사 펠드만의 수학의 함정에는 아름다움을 진리로 착각하는 이론 물리학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수학은 최고의 도구이지만 완벽한 도구는 아니다. 수학은 확실성과 명확성을 갖지만 그것이 완벽한 확실성과 완벽한 명확성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최고이지만 완벽하지 않기에 조심해서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책] 내 안의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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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안의 물고기 저자 : 닐 슈빈 우리는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요? 다들 아시다시피 답은 진화입니다. 그런데 진화라고 할 때 머리 속에 그려지는 그림은 대개 개통이 분화되는 그림이나 DNA, 지질학 연대기같은 그림일 겁니다. 그런데 개통 분화도는 진화의 결과에 대한 것이고 DNA의 나선형태 그림은 감각적으로 진화와 연결되진 않습니다. '내 안의 물고기'는 진화를 감각적으로 느끼게 끔 만들어줍니다.   형태변화는 터무니없이 이루어지지 않고 공통의 원형에서 갖고 있던 것이 변화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전혀 다른 생물들 사이의 차이점이 아닌 유사점이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메세지이자 관점입니다. 사지동물들의 사지의 생김새는 모두 다르지만 뼈 한개 - 뼈 두개 - 동그란 뼈 여러개 - 손가락·발가락의 구조는 동일합니다.  새, 박쥐, 고래, 인간, 개, 말, 도마뱀, 개구리, 도롱뇽 등등 우리 모두가 얼마나 가까운지 피부로 느껴집니다. 이 책에는 사지의 유사성 뿐만 아니라 시각, 후각 등 다른 감각 기관의 유사성, 심지어 미생물과 우리와의 유사성까지 쉬운 말로 잘 설명해 줍니다. 진화를 느낌으로 느끼고 싶다면 가장 돋보이는 책이 아닐까 합니다.

[책] 철학의 근본문제에 관한 10가지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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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의 근본 문제에 관한 10가지 성찰 저자 : 나이젤 워버턴 형이상학적인 철학 담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프리드리히 니체, 자크 라캉, 메를로 퐁티, 소쉬르 등의 이름만 들어도 어려운 하지만 뭔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의 철학을 설명해주는  유튜브나 블로그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작 궁금해 하는 것은 단순합니다.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악은 왜 존재하는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이런 질문들입니다.  '철학의 근본 문제에 관한 10가지 성찰'은 철학의 가장 중요한 10가지 문제에 대한 주장들과 그 주장들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 실었습니다. 그 10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신은 존재하는가 2. 악은 왜 존재하는가 3.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4. 옳음과 그름의 의미는 무엇인가 5. 자유와 평등은 어떻게 성취할 수 있는가 6. 우리의 인식은 어디까지 믿을 수 있나 7. 우리는 외부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8. 과학적 방법이란 무엇인가 9. 우리의 마음은 물질적인 것인가 10. 예술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명료하고 쉬운 말을 사용함으로써 글이 술술 읽혀 집니다. 철학은 어려운 용어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기표와 기의 같은 말도 이름과 이름의 대상이라고 하면 될 것같은데 굳이 새로운 말을 만들어냅니다.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굳이 그런 이유까지 궁금하진 않죠. 이 책 한 권만 읽어도 이미 논파된 주장들에 대해서 속지 않을 수 있습니다. 책의 많은 내용들 중에서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2가지 주장과 그에 대한 비판에 대해 소개합니다. 1. 설계자로서의 신이 존재한다 카메라의 복잡성을 보고 설계자를 추측할 수 있듯이 사람의 눈의 복잡성은 눈의 설계자를 추측할 수 있게 한다. 비판 : 유비가 약하다. 과연 카메라와 사람의 눈이 유사한가? 비판 : 진화론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2. 제1원인으로서 신이 존재한다 비판 : 신의 원인은 무엇인가. 신의 원인이 없다는 것은 모든 사물이...

[유튜브]성역을 만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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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비정상 회담에서 "혐오 표현도 표현의 자유인가" 라는 주제로 토론을 했습니다. 대다수의 패널들이 표현의 자유에도 제한이 있다고 한 반면에 제 기억으로 타일러 만이 유일하게 표현의 자유에 제한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타일러는 "표현의 자유는 케이크를 잘라 한 조각만 취하는 것처럼 부분만 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라고 이유를 댔습니다. 저도 타일러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그 이유는 표현의 자유의 본뜻은 "비판에 대해 성역을 만들지 말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침범할 수 없는 성역이 정해지는 순간 표현의 자유는 파괴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경우는 표현의 자유일까요? 중국에서 '표현의 자유 보장함. 단 공산당 비판 금지' 종교에서 '표현의 자유 보장함. 단 신과 종교는 비판 금지' 인간의 존엄성이나 자유, 평등과 같은 기본권, 인간의 생명, 명예와 같은 것들은 표현의 자유가 침범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고정관념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살인과 절도, 방화, 기물파손이 악이라는 것이 고정관념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지금껏 타파해왔던 수많은 고정관념들은 타파 되기 전까지만 해도 상식이었으며 심지어 많은 경우 인간에게 해로웠습니다. 고정관념은 타파 되기 전까지 사로잡혀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어떤 상식적인 가치조차도 성역이 되어서는 안되는 겁니다. 심지어는 비판과 비난을 나누면서 비판은 해도 되지만 비난은 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엄밀하지 않습니다. 비판과 비난을 구분하는 기준은 고정관념이 아니라는 걸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누군가 어떤 말을 했다면 그 말에 대해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건 다른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입니다. 누군가 살인을 옹호한다면 그것이 사회에 끼칠 해악이나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면서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습니다. 다만 말도 못 꺼내게 해서는 안...

[내생각] 인생 관찰

유튜브 채널 : 충코의 철학  영상 이름 : 삶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feat. 시몬 드 보부아르 '실존주의 철학') 에 제가 달았던 댓글을 몇몇 분들이 좋게 봐 주셨습니다. 그래서 블로그로 옮겨 보았습니다. spinoffnote : 나는 인생은 게임이라고 이해하니 설득력이 있더라. 예를 들어 게임 중 하나인 축구와 비교해 보자. 축구의 목적은 점수를 내는 것이고 점수를 내는 목적은 승패를 정하기 위함이지. 그러나 목적이 행위의 모든 것이라면 사실 승패만 정하면 되니 굳이 축구를 할 필요없이 가위바위보나 주사위로 승패를 결정하면 더 간결한거 아니냐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축구가 가위바위보로 대체될 수 없다는건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 이유는 축구의 본질은 점수와 승패에 있지 않고 점수를 내는 과정, 즉 플레이에 있기 때문이다. 점수와 승패는 플레이의 재미를 더하기 위한 요소일 뿐이다. 마치 그냥 치면 재미가 없어서 점 당 10원이라도 걸고 화투를 치는 것과 같다. 플레이어의 관점에서 모든 행위는 게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지만, 게임 설계자의 관점으론 게임의 목적이 플레이의 재미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게임의 목적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골문 안에 공을 더 많이 넣는 팀이 이긴다는 규정은 손으로 공을 만지지 말라는 규정 이상의 의미가 있는건 아니다. 두 규정 모두 플레이의 재미를 위해 존재한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인생게임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재밌게 플레이 하길 바란다. 정리하면 인생의 의미나 목적은 사실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유가 있어 만들어진 것이다. 그 만들어진 이유는 인생게임의 플레이를 더 재밌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인생의 목적이나 의미를 사실로써 찾을래야 찾을 수 없고, 목적과 의미가 없어도 인생을 살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더 재미있는 인생을 플레이하고 싶다면 목적이나 의미를 만들어 보자. 동어반복이지만 만드는 기준은 당연히 '내 인생플레이를 더 재밌게 만들어 줄 것'이다. 댓글...

[내생각]고타마씨의 가르침 2

긴글 스킵하실 분들을 위해서 요점만 먼저 말합니다. 불교는 과학적 문제해결방법이다 . 1. 금강경에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로전 응작여시관"이란 구절이 있습니다. "일체유위법은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와 같은 것이니 마땅히 이와같이 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일체유위법이란 말을 대개 "모든 존재" 혹은 인생이라고 보고 "인생은 허망한 것이니 집착하지 말라"로 해석을 합니다. 하지만 불법을 문제해결방법으로 바라보는 나의 관점에서 위 말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유위법이란 것의 위(爲)는 짓는다는 뜻입니다. 업(業)과 동일한 뜻입니다. 따라서 유위법은 "사람이 지어낸 것", "인위적인 것"을 뜻합니다. 인위적인 것이란 관습, 종교, 국가, 도덕 등등을 말합니다.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의 내용과 같은 내용입니다. 따라서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로전 응작여시관"의 뜻은 "종교, 관습, 국가, 법률 등등의 인간이 만들어낸 상상의 창조물은 실존하지 않는 것이니 지나치게 속박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2. 깨달음의 정체에 대해서는 원각경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비유하면 눈병이 난 사람이 아무것도 없는 공중에서 꽃을 보거나 둘째 달을 보는 것같다. 실제로 허공에는 꽃이 없지만 눈병난 사람은 헛것을 보고 착각에 집착하여 허공의 성품은 물론 정작 꽃이 나는 곳도 모르는 것과 같다. 이러한 그릇된 집착으로 말미암아 나고 죽음에 헤메이니, 그러므로 무명이라 한다. 그렇지만 무명이라는 것은 실제로 본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꿈을 꾸는 사람이 꿈 속에서 본 것이 꿈 깬 뒤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그러므로 중생들도 본래 나고 죽음이 없는 가운데 있는 것으로 여겨 헤메게 되는데, 원각을 닦는 이는 그러한 본래 없음을 알게 되어 헛도는데서 벗어나게 된다." 해석: 국가, 법률, 종교, 경...

[내생각]고타마씨의 가르침 1

긴글 스킵하실 분들을 위해서 요점만 먼저 말합니다. 불교는 과학적 문제해결방법이다 .   저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불교를 바라봅니다. 기존의 관점으로 불교를 바라보시는 분들은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이 맞다는 가정 하에 불경의 말들과 경전의 역사를 짚어보면 상당히 맞아 떨어진다고 느끼시게 될 겁니다. 말을 풀어가는데 있어 편의를 위해 단정적으로 말을 하겠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깨달음, 마음, 무아 같은 것이 아니라 "인생을 살면서 부딪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어떻게 대할 것이냐"에 대한 것이다. 즉,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의견을 구분하여 인과관계를 바르게 파악하여야 한다. 인과관계를 바르게 파악하면 문제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고, 문제 해결에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진짜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객관적 사실이란 생각으로 만들어내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무위법이라고 부른다. 주관적 의견이란 생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 유위법이라고 부른다. 그래도 구분이 가지 않는다면 객관적 사실이란 생각에 따라 변하지 않는 것이고, 주관적 의견은 생각에 따라 변하는 것임을 기준으로 구분하라. 모든 객관적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사실에 집중하는 것이다. 만약에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면 누가 그것에 대해서 뭐라고 주장하던 간에 그건 의견에 지나지 않게 된다. 예를 들어 우주는 무한하거나 유한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 이럴 때 현명한 태도는 단정 짓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 우주는 유한하다 혹은 무한하다고 주장을 한들 우리가 그것을 확인할 수 없다면 둘 중에 하나가 사실일 것이지만 결국 의견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형이상학적 질문에 대한 답변은 부처님의 관심사항은 아니지만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의견을 구분하고 사실에 대해서는 확인하는 것을 근본으로 둔다"는 부처님의 방법을 적용할 수는 있다. 확인할 ...